사람들이 나보다 군대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던 사람들이 막 연락해서 돈 주고 밥 사주고 차 사주고.. 후에 생활이 궁핍해지면 한달에 한 번 정도 군대를 가는 것은 어떨까. 너무 호들갑들 떨어서(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데) 더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사람들을 안 보고 있다. 어제는 이모가 집에 오신다셔서 휙 도망쳐나왔다. 전화도 안 받았고. 밥 잘 안먹고, 계속 속도 안 좋은데, 밥 사준다고 연락하면 참.
예전에 신검 후 처음 날짜 날아왔을 때는 만나던 여자친구때문에 입대 연기를 했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는 굉장히 미인이었다. 살면서 누구를 다시 만나도 그만한 사람을 만날까 싶었고, 3개월 이상 지속된 첫 연애라서 과감히 입대 연기. 지금 연애 안하면 언제 하겠나 싶었다. 연애하기 전에 망설일 때나 여행하기 전 망설일 때는 "네가 지금이 더 한가하겠냐, 10년 후가 더 한가하겠냐"는 소리를 들었다. 당연히 지금이 더 한가할테니까, 뭘 하든 지금 바로 하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연애할 때는 "네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미인이겠냐, 10년 후 만날 사람이 미인이겠냐"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와서 "당연히 지금 만나는 사람이 미인이지!"라고 대답하고 입대 연기 버튼을 눌렀다. 한점의 망설임도 없이. 음, 뭐, 여자 다 흘러가는 거라서, 지금 돌이켜봤을 때 후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와하하. 이성의 외모에 홀린 경우는 딱 그거 한 번. 연상의 경제학전공자 분. 뭘 보고 나랑 연애했지, 것 참.
졸업 한 학기 앞뒀을 작년 초엔가도 입대 영장이 왔었다. 코스모스 졸업 후 입대하라는 소리였다. 당시에는 하던 공부를 끊고 싶지 않았다. 뭔가 끝맺음했다는 느낌도 없고, 내가 뭘 아는 것 같지도 않고, 지금까지 해놓은 것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싶은 상태에서 공부를 끊고 싶지 않았다. 알고는 있는데 글로 풀어내지는 못하는 지점, 손 갖다대면 저 멀리 잡힐 듯 아스라히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었다. 중간에 사고가 나던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던지 하여 운 좋게 면제되는 스토리를 그려보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것은 부차적인 망상이었고, 2차 연기의 가장 큰 이유는 뭘 좀 해놓고 가고 싶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부터 올 여름가을까지 빡세게 마무리해서 졸업책 볼륨 1,2,3를 찍었다. 볼륨1은 45부 나갔고 볼륨2/3는 나한테만 한 권씩 있다. 그리고, 볼륨1 원고는 그린비/이매진/책세상에 보냈다. 나오면 재밌어지는거고 안나와도 나는 만족.
이제는 내 안에 있던 것들을 상당히 해소해내서, 뭔가를 더 하기 위해서는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들어가서야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는데('군대에 가고 싶었다고? 그 생각 바로 바뀔걸- 겔겔겔겔-'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일단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좋아하는 선생님들 수업을 듣고 싶었고, 선생님들한테 내 생각을 평가받고 싶었다. 간절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고.. 유럽여행까지는 풀어내지 못한 뭔가가 있었다. (졸업책으로 풀었다.) 책 써낸 후에 떠난 동남아 여행은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말했는데, 정말로 동남아 여행은 과유불급이란 생각이 들었던 여행이었다. 싫거나 재미없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생활 5년을 활 쏘는 과정에 비유하면: 활 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선생님들이었고, 그걸 보고 동경하면서 관련 교본들을 굉장히 많이 찾아봤고, 화살을 쏘아붙이는 힘은 온전히 내 것이었는데, 그게 과녁에 맞을지 안맞을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 하는거였다. 계속 책 뒤져보고, 선생님들 보면서, 내 자세가 바른지 이상한지만을 거듭 체크하며, 쏘고 또 쏘고..
또, 지금까지는 쏘아낸 화살이 과녁에 맞더라도 그걸 보고 '명중'이라고 말해 줄 사람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명중'일 필요는 없었다. 대학원 가면 '명중'인지 아닌지가 또 굉장히 중요해지겠지만..
지금은 힘이 좀 딸린다. 문제의식을 지금 수준으로 변주 또 변주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을까 싶고.. 질적으로 고양되지는 못하고 양적으로 확장만 하지 않을까 싶고. 내 마음 속 억하심정을 많이 풀어내서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는 '그렇게-못-되게-하는-힘'에 반항하면서 내 공부를 끌고왔다. 공부하면서 많이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이제는 외부기제들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오히려 그것들을 그리워할 정도로. 돈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로 스트레스 받을 수 있었던 지난 5년이었는데, 앞으로는 다른 문제들은 내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고 돈 문제만 걱정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령, 역사학에 걸리는 태클, 학자에게 걸리는 태클 등은 예전의 내게 큰 위협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정말 많이 컸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더 크려면 뭔가 어둡고 사악한 기운이 나를 위협해줘야 할 것 같았다. 동남아 여행에서 책 써낸 후의 나는 '근원적 욕망'이란게 많이 약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인도나 유럽에서는 뭘 보든 주제랑 하이퍼링크가 걸리면서 생각이 다다다다다닥 들러붙었는데, 동남아에서는 뭘 보든 수업듣고싶다 공부하고싶다 선생님보고싶다 생각만 했다. 사람을 정신적/정서적으로 살아있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뭔가가 사라진 느낌.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
나는 정서적으로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인도 다녀온 직후, 좋아하던(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적/정서적으로 공유하던 것이 막대한huge/magnificent/greatest/ultra 사람이었고, 일상을 공유하는 부분도 많았고, 논문쓰면서 함께 밤새고 의견 나누다가 새벽 5시에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학교 근처 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1년 가량 했고, 학회 운영비를 비학회원/세미나참석자에게도 걷자는 의견에 반발하여 '투쟁'하다가 함께 내쳐지기도 했고.. 내 대학 생활의 절반은 선생님들이, 나머지 절반은 그녀가 있어 어찌어찌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 여학생과 싸우고 안 보게 되었다. 인도 다녀오면 세상이 달라져보인다는 곽 선생(나쁜 놈!)의 말이 저주가 되어 돌아왔다. 학기 중 계획없이 휴학한 것도, 2010년 초부터 지금까지 2년 동안 여행만을 계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에- 한국에 있기 싫었다. 2010년 4-5월 내 블로그 글은 어둡고 칙칙한 기운이 흘러넘치는 시니컬한 것들이다. 이유가 다른데 있는게 아니었다. 이유를 다른데서 찾고 싶었으나..
졸업책이라는 '결과물' 만들어낸 것은 그 스트레스의 반대급부였던 것 같다. 죽음에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
돌아보면 필연이었던 것도 같다. 그녀를 알던 시간의 2/3 이상 연애하고 있었지만, 연애하고 있지 않던 1/3의 시간에도 사귀자는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결국 그렇게 끝나고 말 것이라는 예감때문이었던 것도 같고..
이것저것 다 양보한 후 내가 놓지 못했던 딱 한가지 바람은 그거였다- 대학원가서 계속 공부하는게 힘들고 바꿔낼 수 있는 것이 적어보여도 버텨달라는 것- 또는 함께 버텨보자는 것. 어디서 들었나.. <송환>을 찍은 영화감독 인터뷰에서 읽은 것 같은데. 애인보다 동지가 더 예뻐보일 때가 있단다. 항상 그랬었다. 여자친구가 있든 없든.
그 친구가 대학원 가지 않겠다고- 최소한 학부졸업 후 바로는 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 2009년 겨울이었다. 그 선택을 이해도 하고 공감도 할 수 있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가 떠난 인도. 인도에서도 머릿속은 대학원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가,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싸웠고. 그렇게 안녕.
'공부 왜 하지-', '왜 역사학이지-'에 끝끝내 답해내려는 가장 큰 이유는,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아서다. 지금도.
2년이 지났지만 끝내 채울 수 없는 심연으로 남아있다. 그 자리는.
그렇게 된 이후, 혼자서 공부하는 내 모습이 어떻게든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의지하던 사람이 사라진 후, 나는 공부를 때려칠 수 있는 계기만을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한 1년쯤 지나자 다른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후배들(아, 이 말이 참 무섭다!)이 내게 의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나는 스트레스에 치여 죽을 것 같더라도 그들에게는 공부를 버텨내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순간 굉장히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인생은 패배일 뿐이라는 말, 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거듭 밀어올리는 시지프스, C'est la Vie, 불경, 논어.. 그렇게, 죽은 사람들에게 위안받으며 졸업책을 탈고했다. 굉장히 슬픈 일이지만, 고난역경시련이 내겐 성장통이었다는 소릴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성장통이 남긴 흔적은 앞으로도 남아있을 것. 가령, 지금껏 쭉 여자사람 일반을 싫어하고 있다.)
그렇게 졸업책을 썼다. 덤덤하게. 책에서 2010년의 파토스가 한톤 죽은 것은 그 때문. 또, 2010년 하반기에 학원일하면서 만난 순수한 꼬맹이들 때문. 애들이랑 부대끼며 스스로 초중딩 정서에 가까워지다 보니 정서순화된 면이 없지 않았다. 고맙다. 색다른 경험이었고, 즐거웠다.
또, 졸업책 배부하면서는 지난 5년간 블로그 글을 읽어 준 사람들을 만났다. (나랑 같은 나이의 여자사람 두 분.) 놀랐고, 기뻤고, 내 글 보면서 내게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대로는 내가 뭘 더 할 수 없을 것 같고.. 예쁜 여자사람 둘이 앞에 앉아서 나를 굉장히 좋게 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을 뿐인 상황.
쭉 읽어준 것이 고마워서라도 뭘 좀 더 보여주고 싶은데, 확실히 힘이 좀 딸린다. 내공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는 좀 있지만 그런 것만은 또 아니라, 이 공부를 해내지 못하면/이 글을 쓰지 못하면/이 책을 내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내면의 갈증이 이제는 확실히 덜하다. 좋아했던 여학생의 흔적을 많이 지워냈고, 파토스를 휘휘 두른 글을 모아낸 '졸업책'을 써낸 지금은.
여튼, 그렇게, 정서적 죽음에서 살아돌아왔다. 돌아오는 댓가로 희노애락 오욕칠정 다 던져주고 에토스와 로고스만 남은 밋밋한 퍼스낼리티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감정을 애써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내 파토스는 글에만 있다. 일상은 기쁨즐거움좌절실망 하나도 없고 그냥 쭉.
그래서 입대도 딱히 망설여지지 않고, 떨리지도 않고, 그냥 그렇다.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크다. 지금은 다음 책을 쓸 3년 후, 그리고 내 공부가 일단락될 10년 후를 보고 있다. 입대할 내일보다도. 내일 지구가 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앗, 성장통? 끝내 스피노자도 이해하다니!)
에구, 주절주절.. 하여튼, 잘 다녀올께요.